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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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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人口論, 영어: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은 경제학책이며 영국 고전학파 경제학자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의 저서이다. 초판은 1798년에 《인구의 원리에 관한 일론(一論), 그것이 장래의 사회개량에 미치는 영향을 G.W.고드윈·M.콩도르세 그리고 그 밖의 저작가들의 사색에 언급하며 논함》이라는 제목을 붙여 익명으로 출판하였다.[1] 여섯차례 개정을 거쳐 1826년에 최종판이 나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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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을 통해서,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등비)급수적이지만 식량은 산술(등차)급수적으로 밖에 증가하지[3][4][5] 않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필연적이며, 그로 인해 빈곤과 죄악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1][6] 해결책으로는 산아제한, 결혼연기, 독신 등을 통해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조치와 기근, 질병, 전쟁 등을 통해 사망율을 높이는 적극적인 억제책를 제시했다.[7][8][9][10]
또한, 결국은 상당수가 가난 속에서 살다가 기아, 전쟁, 전염병등이 발생하여 인구대비 식량의 불균형은 시정될 것으로 내다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제초제, 값싼 화학비료, 수생작물의 보급등으로 농업생산량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피임법의 발달등을 통해 인구증가 현상이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다.[2]
맬서스의 인구 이론은 당대 뿐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주었다. 과학에서는 찰스 다윈, 알프레드 월리스 등의 진화론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2] 찰스 다윈은 1836년에 《인구론》을 읽은후에야 진화의 기제가 적자생존, 즉 자연도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다.[11][12]
맬서스는 인구증가 대비 식량 생산량의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적 금욕과 기독교적 도덕을 강조하였다.[13] 이런 그의 주장은 1834년에 제정된 영국의 신구빈법에 반영 되었는데, 구빈원에 수용시 부부를 분리 수용하였으며[11] 노동불능자를 제외하고는 원외구제(院外救濟)를 폐지하였고[14] 노동능력이 있는 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15] 이는 신구빈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애드윈 채드윅이 맬서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13] 또한 사회적 의무이자 빈민의 권리로서 인식되던 빈민구제는 배척되고, 빈곤은 개인의 게으름과 자기 절제의 결여로 낙인 찍히게 되는 인식의 전환이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