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1세
노르망디 공작 출신 잉글랜드 국왕 (1028~1087)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윌리엄 1세(William I, 고대 노르드어: Williame I, 고대 영어: Willelm I,[1] 1028년경 ~ 1087년 9월 9일)는 정복왕(영어: the Conqueror), 사생아왕(영어: the Bastard[2][lower-alpha 1] ) 등으로 알려진 최초의 노르만계 잉글랜드의 군주이며, 1066년부터 사망한 1087년까지 즉위하였다. 롤로의 후손이기도 한, 그는 1035년 이래로 노르망디 공작으로 재위했었다. 공작 자리를 두고 오랜 기간 사투를 벌인 이후인 1060년경에, 그는 노르망디 영지를 자신의 것으로 확고히 하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사망하자,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공격하여,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노르만 군대를 이끌고 해럴드 고드윈슨의 앵글로색슨 병력에 대하여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에 잉글랜드 내 반란들을 진압하였으며 이 일련의 사건들은 노르만 정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나머지 생애는 잉글랜드와 유럽 대륙 내 영토를 통합시키는 노력 및 장자인 로베르 커토즈와 관련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보냈다.
정복왕 윌리엄 William the Conquer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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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의 인장 | |
잉글랜드인의 왕 | |
재위 | 1066년 12월 25일-1087년 9월 9일 |
대관식 | 1066년 12월 25일 |
전임 | 해럴드 2세 (즉위) 에드거 애설링 (즉위 x) |
후임 | 윌리엄 2세 (잉글랜드) |
노르망디 공작 | |
재위 | 1035년 7월 3일 – 1087년 9월 9일 |
전임 | 로베르 1세 드 노르망디 공작 |
후임 | 로베르 2세 |
주군 | 앙리 1세( ~ 1060년) 필리프 1세(1060년 ~ ) |
영지 | 노르망디 공국 |
이름 | |
별호 | 정복왕 |
신상정보 | |
출생일 | 1028년경[1] |
출생지 | 노르망디 공국 팔레즈 |
사망일 | 1087년 9월 9일 |
사망지 | 노르망디 공국 루앙 |
가문 | 노르망디가 |
부친 |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 |
모친 | 에를레바 드 팔레즈 |
배우자 | 마틸드 판 플란데런 |
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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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노르망디 캉 남자 수도원 생테티엔 성당 |
군사 경력 | |
주요 참전 |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와 그의 정부 에를레바의 혼외자로 태어났다. 그의 사생아 신분과 유년 시절은 그가 즉위 후 초기에 일어났던 혼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유년 및 청소년 시기에, 노르만 귀족 계층 출신들은 어린 공작에 대한 통제권 및 자신들의 이익을 두고 서로 다투었다. 1047년에, 윌리엄은 반란을 진압해냈고 공작령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기 시작했으나, 약 1060년에 들어서야 가능하였다. 1050년대 플랑드르의 마틸드와의 혼인은 그에게 인접한 플랑드르 백국이라는 강력한 동맹을 제공해주었다. 혼인을 하던 때, 윌리엄은 노르만 교회의 주교 및 수도원장들을 자신의 지지자들로 내정할 수 있었다. 그의 이 권력의 결합은 그의 눈을 트이게 해주었고, 그는 1062년경에 인접한 멘의 지배권을 차지하였다.
1050년대와 1060년대 초에 윌리엄은 5촌 사이의 자녀가 없던 참회왕 에드워드가 지녔던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왕위 주장자가 되었다. 그 밖의 잠재적 주장자들이 있었는데 이 중에는 에드워드가 1066년 1월 임종 자리에서 왕으로 지목했던, 강력한 잉글랜드의 백작 해럴드 고드윈슨이 있었다. 에드워드가 과거에 자신에게 왕위를 약속했었고 해롤드가 자신의 왕위 주장권을 지지해주기로 약속했었다고 주장하며, 윌리엄은 거대한 함대를 조직하여 1066년 9월에 잉글랜드를 침입했다. 그는 1066년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롤드를 격퇴시키고 전사시켜냈다. 추가적인 군사 활동을 벌인 뒤, 윌리엄은 1066년 성탄절 런던에서 즉위를 하였다. 그는 노르망디로 복귀하기 앞서 1067년 초에 잉글랜드에 대한 통치를 위한 채비를 했었다. 몇 차례 반란이 일어났으나, 1075년경 잉글랜드에 대한 윌리엄의 영토는 대부분 유지되며,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재위 많은 부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윌리엄의 말년에 유럽 대륙 영지 내 문제, 아들 로베르와의 불화가 있었고 데인족들의 잉글랜드 침입 위협을 받았다. 1086년에, 그는 그의 정복 이전과 현재 소유자들을 포함하여 잉글랜드 내 모든 토지 소유 현황을 기재한 조사 자료인 둠스데이 북 편찬을 명했다. 그는 북부 프랑스에서 전쟁을 하던 중인 1087년 9월에 사망했고, 캉에 묻혔다. 그의 재위 기간 잉글랜드에서는 여러 성들의 축조, 잉글랜드 땅의 노르만 귀족들의 정착, 잉글랜드 성직자 구성의 변화 등의 일이 있었다. 그는 영지들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벌이지 않았고 각자를 분리해서 관리하는 걸 계속하였다. 그의 영토는 사후에 분열되어 노르망디는 로베르에게, 잉글랜드는 붉은 머리 윌리엄에게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