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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참여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adidas 2008년 3월 12일 (수) 15:06 (KST)
중국대륙이라는 말 자체가 20세기에 생긴 말입니다. 그러니 그 범위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6월 1일 (일) 18:03 (KST)
모돈이 맞는지 묵특이 맞는지 헷갈리네요. 한자로 보면 모돈, 묵특, 묵돌, 묵독 여러가지가 있는데, 애초에 바야투르라는 말에서 온 것을 보면 묵특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국내 중국사학계에서 어떻게 보나 아는 분은 알려주세요adidas (토론) 2008년 7월 17일 (목) 11:16 (KST)
위키백과토론:위키프로젝트 중국사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BongGon (토론) 2008년 8월 12일 (화) 00:12 (KST)
또 하나 남는 문제는 통일국가가 아닌 한글자 국가에 '~나라'를 붙이지 않는 것인데 이 부분은 차후에 토론되었으면 합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0:02 (KST)
저는 특히 저 분이 진시황의 진나라가 단지 "짧다"라는 허무맹랑한 이유로 진나라의 표기를 진 (왕조)가 아닌 진 (전국통일)로, 그리고 통일황조였으나 훗날 분열된 사마씨의 진나라를 대표명칭인 진 (왕조)로 표제명을 삼으려 하셔서 바꾸는 것에 좀 회의적입니다. 아시겠지만 중요도로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중국 최초의 제국이므로 사마씨에게 밀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 윤성현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0:07 (KST)
복명을 쓰는 나라와 단명을 쓰는 나라는 그 명칭을 달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Ph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0:13 (KST)
adidas님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관용적으로 '-나라'를 사용하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밖에 채택할 수 없는 표제어에 통일 왕조, 외자인 나라만 별도로 '-나라'를 붙이는 것이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논문에서 한 글자 나라는 '~나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의견은 확인 가능한 출처를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예컨대 중국사학회 홈페이지의 학술논문에서 '-나라'라는 표현은 찾기 힘듭니다.) '-나라' 표기를 사용한 예를 말씀하셨지만, '-나라'를 뺀 용례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많습니다.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정식 국호 채택 문제에서 미국과 영국의 예 역시, 표준국어대사전이나 브리태니커, 두산백과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표제어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신뢰할 만한 출처가 있는 것이죠. 그 점에서 '명나라', '청나라'의 경우와는 다릅니다.--백두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5:17 (KST)
처음에는 저도 나라를 굳이 붙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요, 위키백과를 계속 활용하면서 동음이의어의 문제라든지, 독자가 문서를 접할 때의 일의적인 인식, 편집시 괄호를 일일이 넣는 어려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나라를 넣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송나라를 Song으로 하지 않고 Dynasty를 붙여주는데요, 중국어도 송朝라고 하여 분별해주고 있습니다. (일본어 위키백과는 송 (왕조)로 표기하는군요) 표음문자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어에서 송이라고 표기했을 때 宋으로 짐작되기 어렵기 때문에 송 (왕조)나 송나라가 좋을터인데 앞서서도 독자와 편집자의 편의를 위하고, 일상적 용례나 학술적 용례에서도 송나라라고 칭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에 독자연구나 확인가능위배의 문제도 없다고 봅니다. 외자와 외자가 아닌 경우의 분별은 수긍이 가는 것이 일상적인 언어 생활상 외자인 나라에만 나라를 많이 붙여주고 있고요, 또한 외자가 아닌 나라의 명칭은 나라를 굳이 안 붙여주어도 왕조라는 식별이 대부분 되기 때문에 그러한 관행이 생긴 듯 합니다. 서하나라보다는 서하국이 좀더 많이 쓰이겠지만 서하가 서하국보다 더 많이 쓰이듯이요. 신뢰있는 출처의 문제도 꼭 백과사전만이 신뢰있는 출처는 아니며 저명한 역사관련서적에서의 용례 또한 신뢰있는 출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 백과사전에서 어떤 표제어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곧장 위키백과의 제목을 변경할 수는 없는 곳이고 위키백과의 기술적인 특성이나 편집자와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도 제목이 정해질 수 있습니다. --hun99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5:37 (KST)
덧붙이면, 통일 왕조에 대해서만 '-나라'를 붙이는 것은 이상한 논리입니다. 예컨대 춘추 전국 시대의 진(晉), 진(秦),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秦), 삼국 시대에 뒤이은 진(晉) 모두 '진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하나만 '진나라'로 표기한다는건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든 것입니다. 역사 관련 책들에서 이들 나라를 구분해서 어떤 것에는 '-나라'를 붙이고 어떤 것은 안 붙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일관성과 통일감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백두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16:57 (KST)
adidas님과 hun99님의 견해에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며, 그러한 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건, 단지 한 글자의 국호를 가졌다고 해서 두 글자를 가진 국호와 다르게 취급해야 할 근거가 불명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어에 관한 한 최고의 공적 권위를 가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나라'라는 관용적 용법을 알지 못해서, 외자를 표제어로 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를 붙이는 것을 오히려 사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표제어로는 가장 공인된 출처를 가진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동음이의를 회피하기 위해 표제어를 선택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백두 (토론) 2009년 1월 5일 (월) 22:33 (KST)
오래된 토론이지만 기록을 위해 여기 남깁니다. [월 (춘추 전국)], [노 (춘추 전국)], [정 (춘추 전국)] 페이지가 각각 [월나라], [노나라], [정나라]로 이동되었습니다. (위키백과:이동 요청/2020년 9월#월 (춘추 전국) → 월나라) --Puzzlet Chung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0:38 (KST)
흉노에 관심있으신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04:47 (KST)
북경(베이징)에 대해서 “연경”이라는 표현은 옳지만, 명나라와 청나라를 서술하면서 “당시에는 연경”이라는 의미로 쓰면 틀립니다. 북경은 명나라 때 수도가 된 뒤로 연경이 아닌 “북경”으로 불렸습니다. 청나라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9년 1월 19일 (월) 20:05 (KST)
Paulo라는 걸출한 분 덕에 중국사 관련 분류가 카오스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와 남북조시대의 북제를 "제나라" 분류에 넣질 않나... 중국사 프로젝트에서 나라 이름 원칙이 정해진 후에 분류 원칙도 세워서 싹 정리해야 하리라 봅니다. -- ChongDae (토론) 2009년 1월 30일 (금) 00:31 (KST)
얼마 전부터 춘추시대 제나라 임금들 문서 작성에 착수했습니다. 문제는 임금들의 댓수를 '셀지 말지' 그리고 세면 '시호 못 받은 임금'도 '임금'으로 쳐야 하는지입니다. 춘추시대 제나라는 세 명의 임금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아 시호가 없습니다. 제 양공의 종제 공손무지, 제 환공의 아들 중 가장 먼저 군위에 오른 공자 무궤, 제 소공의 아들 세자 사. 이 사람들을 댓수에 넣고 세야 하는 건지 빼고 세야 하는 건지 생각이 정해지지 못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댓수를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기준을 정해서 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아예 전임후임 틀에 댓수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토론 주제에서는 빗나가는 문제인데(관련은 있습니다만), 제나라는 이런 게 없어서 아직 현실화된 고민은 아닌데, 정나라, 위나라에서는 쫓겨난 임금이 복위하는 경우도 있어서 복위할 때마다 다른 댓수로 봐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같은 댓수로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ynparaorthodox (토론) 2009년 9월 12일 (토) 15:51 (KST)
주나라의 번병 진나라 중 현재 위키백과에 등재된 것은 晉, 秦, 陳 세 나라입니다. 예전에는 晉은 진 (춘추), 진 (춘추 전국), 진 (춘추1)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晉과 秦이 춘추시대에 망해 전국시대에서는 역사의 무대 밖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晉과 陳을 구분하기 위해 의미 없는 글자를 붙여야 하는 것 때문에 저는 이 표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현재에는 진 (춘추)와 진 (춘추1) 대신 진 (춘추, 晉)과 진 (춘추, 陳)을 쓰는데, 무의미한 1 대신 의미가 있는 글자를 붙였지만 한국어 위백에서는 표제어에 한글 이외에 다른 문자를 배척하므로 한자를 쓰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다음을 제안합니다.
1. 晉은 당진, 秦은 섬진이라고 한다. 이는 晉이 옛 당나라 땅을 포함하며 秦은 섬 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陳의 표기가 없음이 단점입니다.
2. 晉은 진 (산서), 秦은 진 (섬서), 陳은 진 (하남)이라고 한다. 이는 각 제후국의 중심지가 있는 현재 중국의 성 이름에서 딴 것입니다. 현대어니 현대 중국어 발음대로 하고 싶지만 山西와 陝西를 구별할 방법이 없어서 한자를 우리식으로 읽었습니다.
3. 晉은 진 (희진) 혹은 진 (희성), 秦은 진 (영진) 혹은 진 (영성), 陳은 진 (규진) 혹은 진 (규성)이라고 한다. 이는 각 제후국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입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1년 8월 14일 (일) 19:52 (KST)
25사의 사서에 관한 항목을 보면, 해당 사서의 표제 구성을 열거하며 열전이나 기(紀)에 등재된 인물들을 하나하나 링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 위키백과에 등재되지 않은 인물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등재되어 있는 인물의 경우 사서 항목의 표제어와 실제 작성된 인물의 표제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때문에 사서 항목에 보이는 열전 목록을 보고서는 해당 인물의 정보를 볼 수 없지만, 어찌해서 다른 방법으로 하다 보면 그 인물이 멀쩡히 등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앞으로 인물들을 등재하실 땐...
확인한 후 작성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威光 (토론) 2013년 5월 16일 (목) 02:33 (KST)
현재 프로젝트 원칙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중국 귀족 작호는 '봉토'+'작위'의 꼴이 많습니다. 이는 본디 '국가'+'군주명'이던 것을 봉건시대에 여러 군주의 이름들을 작위로 편입하면서 형성된 체계입니다. 따라서 군주의 이름을 귀족에게도 적용하면 '봉토 작위명'이 되겠죠. 그러나 귀족 작호명은 노국대장공주 같이 하나로 붙여쓰는 경우가 많습니다(몽골인이자 고려인이지만 작호는 중국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니 예로 적합합니다). 이 원칙은 귀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까요. 오래 전한의 제후왕 항목을 만들어왔는데 항목명을 왕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서 이 의문을 회피해 왔습니다만 성양경왕 동명이인 항목을 만들려 하니 피할 수가 없습니다. 군주와 귀족으로 나눠서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고 하면 전한 제후왕의 군주적 면모가 오초칠국의 난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리기 때문에 누구는 성양 경왕이 되고 누구는 성양경왕이 될 겁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5년 11월 5일 (목) 13:51 (KST)
연호는 주로 국가이름이 안들어 갈때가 있는데 그런거를 추가해야 되고 그 다음에 연호에는 군주의 이름도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예: 한고조(중국 한나라,유방) 1655dlehdbs (토론) 2016년 1월 11일 (월) 14:21 (KST)
위키프로젝트토론:위키백과 외국어의 한글 표기에 의견을 남겼습니다.--대한민 (토론) 2016년 1월 15일 (금) 16:14 (KST)
명량 해전은 명백히 조선군의 승리, 노량 해전은 명백히 조명 연합군의 승리이니까 넘어가지만 왜교성 전투는 할 말씀이 많습니다. 왜교성 전투는 분명히 조명 연합군이 왜교성 공성에 실패를 거두기는 했지만 일본군의 함대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일본군이 승리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린의 명나라 수군은 독단적인 행동을 하다가 위기에 빠져서 명나라 전선이 소실당하고 800명의 병사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일어난 건 맞지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장도에서 30여 척의 왜선을 격침시키고, 11척을 나포함은 물론 3,000명의 일본군(왜군) 병사를 물리쳤습니다. 일단 무승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마저도 애매합니다. --Mister Show (토론) 2017년 3월 12일 (일) 23:20 (KST)
@그ㅐㅐ11: @威光: 의견 부탁드립니다.
※ 토론:관롱집단 관련 토론이 있어 추가해둡니다.
관롱집단은 선비족들의 무사 집단을 가르킨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선비족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선비족의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선비족인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선비족인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선비족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북위때부터 있었던 선비족 무사 집단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선비족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롱집단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실제로 문벌 귀족들의 족보를 따지면 한족화된 이름을 쓸려고 했던 선비족이 대부분이지만 8주국 관롱 집단은 예전부터 혈통의 순수성을 지켜오기 위해 선비족끼리 결혼 하였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자 사용을 추천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원래 한족들을 정복하고 낙양으로 이동하였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은 어릴때의 이름도 선비족의 이름으로 금강나라연이였고 보육견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자 선비족의 관롱집단 한족들을 피지배인으로 만들고.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이 관롱집단은 결국은 선비족끼리 결혼하여 혈통을 유지한 선비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연은 선비족인 독고씨와 친척 관계이다. 양견과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선비족의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나라와 당나라는 해외 학계에서는 중국인이 아닌 선비족의 역사로 인정되는 것이 정론이다. 왜냐면 북위의 선비족 지배층들이 중국인 한족들을 정복하여 중국인들이 피지배민족이 된 북위에서부터 이어져온 수나라, 당나라 또한 지배층이 선비족 순수 혈통이였으며 피지배민족인 중국인들은 평민이나 하위 계층으로 머물며 상위 계층으로 가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 내용(특히 강조 부분)이 근거가 있는건가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출처도 찾아볼 수 없네요. 자꾸 이 내용으로 반복적인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견 부탁드립니다. --종코 (토론) 2019년 10월 27일 (일) 20:0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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