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서안 지구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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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서안 지구 통치는 1950년 4월 24일부터 시작되어, 1988년 7월 31일 영유권 포기까지 계속되었다. 제1차 중동 전쟁 당시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 영토를 합병하였는데, 이 영토는 이후 서안 지구(동예루살렘 포함)로 불리게 되었다. 서안 지구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서안 지구를 점령할 때까지 요르단의 영토에 속하였으며, 1988년 요르단은 서안 지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였다.[1][2][3]
서안 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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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ضفة الغربي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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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당시의 지도. | ||||
수도 | 암만 | |||
• 제1차 중동 전쟁 | 1948년 5월 14일 | |||
• 합병 | 1950년 4월 24일 | |||
• 제3차 중동 전쟁 | 1967년 6월 5일 ~ 10일 | |||
• 요르단의 영유권 포기 | 1988년 7월 31일 | |||
인문 | ||||
공용어 | 아랍어 | |||
경제 | ||||
통화 | 요르단 디나르 | |||
종교 | ||||
종교 | 수니파 (다수) 기독교 (소수) | |||
기타 | ||||
현재 국가 | 서안 지구 |
1948년 5월 14일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따라 아랍인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영토에 주변 아랍 국가의 군대가 진입하였다. 이 중 압둘라 1세를 주도로 한 요르단군은 예루살렘 구시가, 예리코, 베들레헴, 헤브론, 나블루스, 라말라 등 주요 도시와, 요르단강 및 사해 주변 영역을 대부분 점령하였다.[4] 휴전 후 요르단이 점령한 지역은 요르단의 통제 하에 남았으며, 이후 서안 지구라고 불리게 되었다.[lower-alpha 1]
1948년 12월의 예리코 회담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주요 인사가 모여 요르단의 통치를 인정하였다. 1950년 4월 24일 서안 지구가 공식적으로 요르단에 합병되었지만, 국제 사회 대부분은 불법적인 합병으로 보고 인정하지 않았다.[6] 약 1달 후 아랍 연맹은 요르단의 확언을 바탕으로, 합병된 영토를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의 '신탁 통치'로 보기로 결의하였다. 요르단의 합병은 영국, 미국, 이라크가 승인하였으며, 파키스탄이 승인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6][7][8][9][10] 1955년 요르단이 유엔에 가입할 당시 이와 관련한 반대는 없었다.[11]
요르단이 서안 지구의 거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자, 요르단의 인구가 약 40만에서 130만으로 3배 이상 폭증하였다.[4][12] 팔레스타인인은 요르단 내에서 특별한 차별을 받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요르단 의회에서도 약 절반 가량의 의석을 차지했다.[13]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 이후 요르단이 서안 지구의 통제권을 상실한 후에도, 1988년 영유권을 포기할 때까지 팔레스타인인의 시민권 인정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