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https://wikiwandv2-19431.kxcdn.com/_next/image?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3/Bundesarchiv_Bild_146-2008-0155%252C_Alexander_von_Falkenhausen.jpg/640px-Bundesarchiv_Bild_146-2008-0155%252C_Alexander_von_Falkenhausen.jpg&w=640&q=50)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남작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에른스트 알렉산더 알프레드 헤르만 프라이허 폰 팔켄하우젠(독일어: Ernst Alexander Alfred Herrmann Freiherr von Falkenhausen, 1878년 10월 29일 ~ 1966년 7월 31일)은 장제스의 군사고문관이었던 독일인 군 장교였다.[1][2][3] 팔켄하우젠은 중독합작 당시 중국군을 개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938년 독일이 일본의 압박 하에 중국에게 지원을 중단하였고, 팔켄하우젠은 중국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4]
간략 정보 출생일, 출생지 ...
![]() Alexander von Falkenhausen | |
![]() 1940년 제복 차림의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 |
출생일 | 1878년 10월 29일(1878-10-29) |
---|---|
출생지 | 독일 제국 슐레지엔 지방 크프야트쿠프 |
사망일 | 1966년 7월 31일(1966-07-31)(87세) |
사망지 | 서독 라인란트팔츠 주 나사우 |
복무 | ![]() |
복무기간 | 1897년-1930년 1934년-1944년 |
근무 | 독일 제국 육군 |
최종계급 | 보병장교 |
주요 참전 | 의화단 운동 |
기타 이력 | 중화민국 군사고문관 및 장제스 개인고문관 |
서훈 | 프로이센 왕관장 |
닫기
유럽으로 돌아온 뒤 팔켄하우젠은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벨기에의 군정청 총독이었다. 팔켄하우젠은 파울라 폰 베데코프와 처음 결혼을 했고, 이후 세실 벤트와 재혼했다. 팔켄하우젠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벨기에의 총독이었던 루트비히 폰 팔켄하우젠의 조카였으며,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의 직계 자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