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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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은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읍성이다. 1986년 9월 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 수원읍성(水原邑城)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방치되다 보니 수원고읍성으로 점점 버려진 건축물이 되어가고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93호. 높이 약 2.5m, 너비 약 2∼2.8m의 축성 자취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수원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있던 곳으로 현재 약 540m 가량이 남아 있으나 원래의 길이는 약 1.2k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隆陵), 정조와 그 왕비의 능인 건릉(健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이 읍성이 세종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둘레는 270보(약 1.2km)이고, 성 안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이 퇴락되었다고 적혀 있어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뒤 1789년(정조 13)에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현륭원(顯隆園: 지금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그 보호구역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옛 터가 상당수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현존하는 성터에서 고려시대의 자취는 융릉의 북쪽 산 정상부에 남은 성벽의 일부로, 이곳에서는 다량의 고려시대 기왓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수원고읍성은 이곳 북편의 정상부에서 좌우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로 좌우를 연결하는 장방형의 성이었으나, 인구의 증가 및 협소한 공간 등의 이유로 성 안의 치소(治所)들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자, 성은 자연히 황폐하여지고 수백년 후에는 현륭원의 축조공사로 그나마 잔존하던 옛 성의 자취들이 유실되었다고 본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1]
고려 때 수원에 읍성으로 쌓았으며, 조선 정조 13년(1789)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읍성을 쌓을 때까지 사용되었던 곳이다.[1]
본래 낮은 산능성을 이용하여 계곡 아래의 평지까지 에워 싼 형태였으나, 성터의 대부분이 무너지고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가 540m 안팎이다. 흙을 다져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성벽은 윗부분이 2∼2.5m이고 높이는 4∼5m이며, 동문터와 서문터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1200m쯤 되며 성안에는 2곳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성벽을 자연지형에 따라 복원하여 보면 3,500m쯤 되어 큰 차이가 난다.[1]
결국 이 성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조선시대까지 읍성의 기능을 하다가 행정조직상의 정비와 무덤의 이장에 따라 너무 좁아지자 사용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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