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군
조선의 정종 제2대 국왕의 7남이자 왕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조선의 정종 제2대 국왕의 7남이자 왕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수도군 이덕생(守道君 李德生, 1393년 4월 4일(음력 2월 15일 ~ 1449년 8월 7일(음력 7월 10일))은 조선 전기의 왕자로, 조선 제 2대 정종의 7남이자 서7남이며 생모는 숙의 윤씨이다. 호는 묵은(默隱)이며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1430년(세종 13) 원윤(元尹)이 되고, 1444년(세종 26) 명선대부 수도정에 봉해졌으며, 1449년(세종 31년) 2월 박만(朴萬)·원생(元生) 등이 그의 집 근처에서 불법으로 소, 말 등을 도살한 일로 탄핵을 받고 전라도 담양군에 유배되어 가던 중 병사했다. 생전에는 명선대부 수도정이었고, 고종 때 가서 군으로 추증되었다.
조선 제 2대 정종의 7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정부인으로는 군부인 여산 송씨(郡夫人 礪山宋氏)이다. 자녀로는 정부인 송씨가 낳은 장남 어산부정 검(語山副正 儉)와 차남 동림부정 암(東林副正 巖), 3남 풍산부정 외(豊山副正 畏)와 딸이 있다.[1]
오랫동안 작위가 없다가 1430년(세종 13) 원윤(元尹)에 책봉되었다.[2] 1431년 이녹생(李祿生) 등과 함께 연고가 있다는 이유를 대고 종학(宗學)에 나아가지 않는다 하여 종부시가 세종에게 이를 보고하였다.[3]
1433년에는 허리 아래가 아프고 저리다는 이유로 반열에 참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부시의 탄핵을 받았다.[4] 1444년(세종 26) 명선대부 수도정에 책봉되었다.[5]
1449년(세종 31년) 2월 박만(朴萬)·원생(元生) 등이 수도정(守道正) 이덕생(李德生)의 집에 숨어 살며 또 소뼈를 그의 집 뒷편 뜰에 묻어두고 감추었다가 적발되었다.[6] 이 일로 그대 7월 4일 전라도 담양군으로 유배되었다.[7] 7월 10일 유배지로 가던 길에 용인(龍仁)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8]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미아리(楊州彌阿里)에 있다. 고종 때 가서 군에 추증되고, 시호를 받았다.[9]
순조 때 후손들이 포천군 소흘면 무림리, 후일의 포천시 소흘읍 무림2리 258-12번지 산으로 이장하였다. 묘소 아래에는 재실 묵은사와 백색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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