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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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5년 10월 14일 ~ 1838년 10월 14일)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다. 산악파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는 급진적 사회주의의 이념과 초기 프랑스 유물론에 근거한 사회주의 이론 저작물을 내놓았는데, 1837년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철학자로도 유명하다.[1] 1838년 샤를 푸리에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보는 팔랑스테르에서 전통 가정을 비웃고 정당인 섹스당를 벌여야 인류의 내재적 욕망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랑과 열정적 매력을 여성의 여성해방론에 의해서 성을 공유해야 하며, 성 학대, 근친상간, 심지어 수간을 포함해 그 어떤 형식의 성 만족이든 모두 허락해야 한다는 엽기적인 주장까지 펼치기도 했다.[2]
장 지구가 그린 샤를 푸리에의 초상화 (1835년) | |
학자 정보 | |
본명 |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
로마자 표기 | 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
출생 |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5년 10월 14일 프랑스 왕국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두 (데파르트망) 브장송 |
사망 |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838년 10월 14일 (63세) 7월 왕정 일드프랑스 센주 (프랑스) 파리의 아롱디스망 메트로폴 메트로폴 뒤 그랑 파리 파리 (프랑스) 파리 3구 |
직업 |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작가 |
언어 | 프랑스 |
국적 |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프랑스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
민족 |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프랑스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 |
종교 |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
필명 |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프랑스어: 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
시대 | 19세기 철학 |
지역 | 서양 철학 |
활동기간 | 1808년 ~ 1838년 |
장르 | 정치철학, 경제학, 욕망철학 |
학파 | 공상적 사회주의, 푸리에주의 |
업적 | 팔랑스테르 |
부모 | 마리 뮈게, 샤를 푸리에 시니어 |
주요 작품 | |
팔랑스테르 | |
영향 | |
영향 받은 인물 | 레티프 드 라 브르통느 |
서명 | |
묘비 | |
묘소 | 몽마르트르 묘지 |
경제학 |
일반 영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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