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마코토
일본의 제30대 내각총리대신 (1858-1936)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사이토 마코토(일본어: 齋藤 實, 1858년 12월 2일~1936년 2월 26일)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이자 관료,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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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임기 ...
사이토 마코토 齋藤 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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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총리대신 재임 시(쇼와 7~9년) | |
일본의 제9대 내대신 | |
임기 | 1935년 2월 26일-1936년 2월 26일 |
전임 | 마키노 노부아키 |
후임 | 이치키 기토쿠로 |
군주 | 쇼와 천황 |
일본의 제30대 내각총리대신 | |
임기 | 1932년 5월 26일-1934년 7월 8일 |
전임 | 이누카이 쓰요시 |
후임 | 오카다 게이스케 |
군주 | 쇼와 천황 |
일본의 제41대 문부대신 | |
임기 | 1934년 3월 3일-1934년 7월 8일 |
전임 | 하토야마 이치로 |
후임 | 마쓰다 겐지 |
일본의 제47대 외무대신 | |
임기 | 1932년 5월 26일-1932년 7월 6일 |
전임 | 요시자와 겐키치 |
후임 | 우치다 고사이 |
조선총독부의 제5대 총독 | |
임기 | 1929년 8월 17일-1931년 6월 17일 |
전임 | 야마나시 한조 |
후임 | 우가키 가즈시게 |
군주 | 쇼와 천황 |
조선총독부의 제3대 총독 | |
임기 | 1919년 8월 13일-1927년 12월 10일 |
전임 | 하세가와 요시미치 |
후임 | 우가키 가즈시게 |
군주 | 다이쇼 천황 |
일본의 제14-18대 해군대신 | |
임기 | 1906년 1월 7일-1914년 4월 16일 |
전임 | 야마모토 곤노효에 |
후임 | 야시로 로쿠로 |
총리 | 사이온지 긴모치 가쓰라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가쓰라 다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
일본의 제3대 함정본부장 | |
임기 | 1903년 10월 27일-1906년 1월 10일 |
전임 | 아리마 신이치 |
후임 | 이주인 고로 |
장관 | 사이고 주도 야마모토 곤노효에 |
일본의 제3대 해군차관 | |
임기 | 1898년 11월 10일-1906년 1월 7일 |
전임 | 이토 슌키치 |
후임 | 가토 도모사부로 |
장관 | 야마모토 곤노효에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58년 12월 2일(1858-12-02) |
출생지 | 일본 무쓰국 이사와군 시오가마무라 (지금의 이와테현 오슈시 미즈사와) |
사망일 | 1936년 2월 26일(1936-02-26)(77세) |
사망지 | 일본 도쿄 |
소속 | 일본 해군 |
정당 | 무소속 |
서명 | |
군사 경력 | |
복무 | 일본 제국 |
복무기간 | 1879년–1928년 |
최종계급 | 대장(大将) |
지휘 | 순양함 아키쓰시마 순양함 이쓰쿠시마 |
주요 참전 | 청일전쟁 러일전쟁 |
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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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병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유학한 자수성가형 인물로, 해군 대장과 해군 대신을 지냈다. 1919년부터 1927년까지 제3대, 1929년부터 1931년까지 제5대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근무했다.
1919년 9월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러 조선의 남대문역에서 내리다가 강우규 등의 폭탄 습격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3·1운동 이후 이오키 료조 등과 협조해 식민지배를 강화할 목적으로, 조선 총독으로서 종전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통치 방법을 전환시켜 식민지 반발을 무마하려 노력했다.[1]
1925년에 자작이 되고,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내각총리대신,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겸임 외무대신을 지냈다. 1933년 겸임 문부대신을 지내다가 1934년 사퇴하였다. 이후 내대신으로 재직 중 1936년 2월 26일에 발발한 2·26 사건에 가담한 청년 장교들에 의해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