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Hunminkoh/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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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스페인어: Bernardino de Sahagún , 1499년 – 1590년 2월 5일)은 프란치스코회 수사, 선교사제, 민족지학자로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 (현재 멕시코 )의 가톨릭 복음화에 참여했다. 1499년 스페인 사아군에서 태어나 1529년 누에바에스파냐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이후 1590년 사망하기 전까지 누에바에스파냐에 머무르며 나우아틀어를 배우고 아즈텍 신앙, 문화 및 역사 연구에 전념했다. 비록 주임무는 선교 였지만 토착 세계관과 문화를 기록한 그의 업적으로 인해 "최초의 인류 학자 "라고 불리우기도 한다.[1] [2] 그는 또한 나우아틀어 연구에 기여했으며 시편, 복음서, 교리 문답을 나우아틀어로 번역하였다.
사아군은 누에바에스파냐 문물일반사 (Historia general de las cosas de la Nueva España)의 편찬자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이하 문물일반사). [3]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문물일반사의 필사본은 피렌체 필사본이다.. 총 2,40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열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주민 삽화가들이 원주민 기법 또는 유럽식 기법으로 그린 약 2,500개의 삽화를 수록하고 있다. 본문은 양면에 각각 스페인어 와 나우와틀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삽화는 세 번째 본문으로 간주되어야한다. 이 책은 아즈텍 사람들의 문화, 종교적우주관 (세계관), 제의, 사회, 경제 및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 12 권에서는 테노치티틀란-틀라텔롤코의 시점에서 멕시코 정복을 기술한다. 사아군은 문물일반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민족지학적 정보를 수집하고 정확성의 검증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였다. 문물일반사는 "서구의 비서구 문화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기록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며,[4] 사아군은 아메리카 민족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베르나르디노 수사는 1499 년 스페인 사아군에서 베르나르디노 데 리베라(Bernardino de Rivera)로 태어났다. 이후 그는 살라망카 대학에 다니는 동안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조에 노출되었다. 이 시기 살라망카 대학은 에라스무스의 종교개혁적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스페인 프란체스코회의 지적 중심지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은형제회 또는 프란체스코회에 가입하였고[2] 1527 년경에 성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프란치스코회 관습에 따라 자신의 출생 도시 이름으로 성을 변경하여 사아군의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de Sahagún)가 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ez)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은 1521 년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현재의 멕시코 시티)을 정복 했으며 그 후 1524 년에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사아군은 그의 학문적, 종교적 명성에 힘입어 1529 년 누에바에스파냐에서의 선교 사업에 파견되었다. [2] 그는 이후 61년 여생을 신대륙에서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