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유민/안네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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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넬리스 "아네" 마리 프랑크(독일어: Annelies "Anne" Marie Frank 독일어 발음 (도움말·정보), 네덜란드어: Annelies "Anne" Marie Frank 아널리스 "아너" 마리 프랑크[*], 1929년 6월 12일 ~ 1945년 3월 12일)는 《안네의 일기》를 쓴 이로 알려져 있는 유대계 독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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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 |
출생 | 1929년 6월 12일(1929-06-12)![]() |
사망 | 1945년 3월 12일(1945-03-12)(15세)![]() 유대인 강제수용소 베르겐벨젠(Bergen-Belsen)에서 병으로 죽음. |
국적 | ![]() |
종교 | 유대교 (개혁파 유대교) |
부모 | 아버지 오토 프랑크, 어머니 에디트 프랑크, 언니 마르고트 |
주요 작품 | |
《안네의 일기》 | |
영향 준 인물 | 이병기 조지 스티븐스 |
서명![]() |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당시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집권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가족을 따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해 점령하면서 네덜란드에서도 유대인들이 잡혀가기 시작하자, 1942년 7월 6일 프랑크 일가족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의 직장이 있던 암스테르담의 프린선흐라흐트(Prinsengracht) 거리 263번지 건물 뒷편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때 프랑크 일가족 뿐만 아니라 헤르만 판 펠스 일가족, 프리츠 페퍼 등도 합류하여 모두 8명의 유대인들이 은둔 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안네의 일기》는 이 시기에 안네가 쓴 것이다. 그러나 1944년 8월 4일 게슈타포에게 은신처가 발각되어, 숨어있던 전원이 붙잡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 중 안네는 언니 마르고트 프랑크와 함께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안네는 강제수용소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티푸스를 앓았으며, 1945년 3월 12일에 15세의 나이로 죽었다.
프랑크 가족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은신처는 게슈타포가 훼손했지만, 오토 프랑크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프랑크 가족을 돕고 있었던 미프 히스가 그 곳에서 안네의 일기장을 찾아내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붙잡힌 8명의 유대인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가 히스로부터 일기장을 돌려받아, 전쟁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바라던 안네의 마음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일기를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안네의 일기》는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약 2,500만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 명서가 되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