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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폭격 (영어: bombing of Dresden, 독일어: Luftangriffe auf Dresden)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유럽 전선에서 마지막 몇 달 동안 연합국인 미국과 영국이 독일 작센 주의 주도인 드레스덴 시를 대규모 폭격한 사건이다. 1945년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네 번의 공습에서 영국 공군 (RAF) 소속 중폭격기 722대와 미국 육군 항공대 (USAAF) 소속 중폭격기 527대가 드레스덴 시에 3,900톤 이상의 고폭탄 및 소이탄을 투하했다.[1] 폭격과 그로 인해 발생한 화염폭풍으로 드레스덴 도심의 40km²가 파괴되었으며[2], 22,700명[3]에서 25,000명[4]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육군 항공대의 공습은 이후로도 세 번 더 이어졌는데, 각각 3월 2일과 4월 17일 두 번의 공습은 철도 차량 기지를, 적은 규모였던 4월 17일 공습은 산업 구역을 표적으로 삼았다.
공격이 벌어진 직후의 반응과 종전 후 공격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논의는 드레스덴 폭격이 전쟁에 관한 도덕적 '유명 소송'의 일례가 되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5] 1953년 미국 공군 보고서는 이 작전을 독일의 전쟁 총력을 지원하는 110개의 공장과 50,000여명의 노동자를 수용하는, 독일의 군사 및 산업시설 표적 (주요 철도 교통시설 및 통신센터로 주장)에 대한 정당한 폭격이라고 옹호했다.[6] 일부 연구자들은 다리를 폭격한 점과 같이 통신 기반시설 전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며, 도심 외부의 대규모 산업 구역을 삼은 것도 역시 아니라고 주장했다. [7] 폭격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엘베 강의 피렌체 (Elbflorenz)'라고도 언급되던 드레스덴은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크지 않거나 전혀 없는 문화명소였으며, 드레스덴 폭격은 무분별한 지역폭격이자 전과에 상응하는 비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8][9]
주장되는 바에 따른 사망자수의 큰 차이는 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1945년 3월 나치 정권은 드레스덴 공습의 사상자 수를 200,000명으로 조작하여 언론에 발행하도록 명령했고, 추정된 통계에 따라 사망자수가 500,000명까지 늘기도 한다.[10] 당시 시 당국은 희생자를 25,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2010년 시의회가 의뢰한 조사를 비롯한 여러 차후조사가 이를 지지한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