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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포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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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 포위전(보스니아어: Opsada Sarajeva 옵사다 사라예바, 세르비아어: Опсада Сарајева)은 현대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중 하나이다.[7] 처음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게 포위된 이후 보스니아 전쟁 기간인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1,425일) 동안에는 스릅스카 공화국군에게 포위당했다. 이 포위전은 스탈린그라드 포위전보다 3배 길며 레닌그라드 포위전보다 1년 더 길다.[8]
사라예보 포위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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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전쟁의 일부 | |||||||
![]() 전차 포격을 받고 불타는 보스니아 의회 건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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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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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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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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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ARBiH군 : 6,110명 사망[6] HVO군 : 67명 사망[6] 총 6,177명 사망 | 병사 2,229명 사망[6] | ||||||
민간인 5,604명 사망.[6] 총 약 13,952명 사망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보스니아 영토 일부를 가지고 있는 스릅스카 공화국(RS)의 새로운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인은[9] 약 13,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사라예보를 포위하고[10][11] 주변 고지에 주둔했다. 그 곳에서 세르비아 민병대는 대포, 박격포, 전차, 대공포, 중기관총, 로켓 발사기, 지대공미사일, 저격총 등을 이용하여 도시를 공격했다.[12] 1992년 5월 2일부터는 세르비아군이 도시를 봉쇄했다. 도시 내부에 포위된 보스니아군 70,000명은[13] 빈약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포위를 뚫을 수 없었다.
이 포위전에서 민간인 5,434명을 포함한 13,952명이 사망했다. 보스니아군의 사망자는 6,137명이며, 세르비아 민병대의 사망자는 2,241명이다. 1991년 포위전 직전 사라예보와 주변지의 인구 조사에서는 525,980명이었다. 포위전 기간의 인구 조사에서는 도심지 인구가 43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포위전이 끝난 이후 사라예보 내의 생존자들은 300,000명에서 380,000명까지 줄어들었다.[10]
전후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포위전 기간 동안 인도에 반한 죄를 저지른 세르비아계 장군 2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스타니슬라브 갈리치[14]와 드라고미르 밀로셰비치[15]는 각각 종신형과 29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몸칠로 페리시치는 27년형을 선고받았으나[16] 2013년 2월 가석방했다.[17] 또한, 11명의 제소자 중에는 스릅스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이자 포위전에 참여한 라도반 카라지치도 있다.[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