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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전투(釜山鎭戰鬪)는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 첫 번째 전투이다. 병력, 식량, 무기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조선군이 패배하고 부산진성은 곧 함락되었다. 부산진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동래성으로 진격하였으며, 일부는 남서쪽 다대포진으로 항하였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2년 11월) |
당시 조선과 명나라 정벌을 계획하고 있던 일본의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벌을 명령한다.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 소 요시토시와 마쓰라 시게노부 등의 병력 1만 8,700명이 병선 700척에 승선하고 진군하여 부산 영도에 상륙한다.
그 모습을 목격한 부산진 방어 지휘관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이 부산진성으로 들어가 수성(守城)을 준비하였으며, 일본군 침공 보고를 접수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은 관내 함성을 모두 가라앉히고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또 이웃한 경상우수사 원균도 부하에게 우수영을 맡겨 놓고 도망쳤다. 1592년 5월 24일(음력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제1군이 부산진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공격했다.
전투는 오전 5시~7시에 첫 전투가 벌어졌다.[1] 부산진성을 지키는 장수 부산첨사 정발은 부족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으며, 오전 10시~12시경 2차 전투 끝에 부산진성이 일본군에 함락되었다. 첨사 정발은 머리에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부산진성 안의 군인들 역시 모두 거의 다 전사했고 정발의 첩 애향은 자살하였다. 다만 몇몇 병사들이 시체더미에 숨었으며, 전투가 끝난 이후 고니시가 민간인들과 항복하는 포로들에 대한 살육은 중단하자 항복하여 포로로 있다가 4월 17일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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