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친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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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친 학살(크로아티아어: Pokolj u Voćinu 포콜 우 보치누)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이었던 1991년 12월 13일에 크로아티아 보친에서 세르브계 준군사인 흰 독수리 부대가 민간인 43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 학살은 파푸크-91 작전으로 크로아티아 육군(HV)이 보친을 탈환하기 직전 철수 명령을 받은 준군사들이 철수 직전 자행했다. 피해자는 이웃을 보호하러 했던 세르브인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크로아트인이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총살로 사망했으나 일부는 도끼나 전기톱으로 살해당했고 더러 불에 타 죽은 사람도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문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매장되지 않은 채 시신이 그대로 방치되었다. 12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밤 흰 독수리 부대는 마을에 있던 550년 된 교회를 폭파하고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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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친 학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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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의 일부 | |
크로아티아에서 보친 마을의 위치. 1991년 12월 말 기준 세르브계 군사 및 JNA가 점령한 지역은 빨강으로 색칠되어 있다. | |
위치 | 크로아티아 보친 |
좌표 | 북위 45.619861° 동경 17.547813° / 45.619861; 17.547813 |
발생일 | 1991년 12월 13일 |
대상 | 대부분 크로아트인 민간인 |
종류 | 즉결처형, 민족 청소 |
사망자 | 43명 |
공격자 | 흰 독수리 준군사 |
동기 | 반가톨릭주의, 반크로아티아 감정, 대세르비아, 세르비아화주의 |
12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 크로아티아 육군이 전날 세르브인들이 떠난 보친 마을을 점령했다. 그 후 크로아티아 군인들이 마을에 있었던 세르브인의 집 여러 채를 불태웠다. 얼마 후 당시 미국 하원의원이었던 프랭크 맥클로스키가 보친 마을을 둘러보았고 다음 날 자그레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친에서 집단학살이 있었다고 말했다. 맥클로스키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종합의료센터의 임상부교수인 제리 블라스코비치 박사를 설득해 학살 조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학살 혐의로, 보이슬라브 셰셸을 보친 내 비세르브인 추방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보친에서의 학살은 집단학살(genocide)가 아니라고 판결했으며 크로아티아가 1991년 12월에 보친 지역에서 세르비아군이 크로아트인을 학살했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