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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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전쟁(일본어: 戊辰戦争)은 1868년부터 1869년 사이에 에도 막부의 세력과 교토 어소에 정치 권력을 반환하기를 요구하는 세력과의 싸움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보신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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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의 변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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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1869년 일본 제국 |
1869년 에조 공화국 | ||||||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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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일본이 개항하면서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의 이이 나오스케(하코네)가 고메이 천황의 칙허도 없이 5개의 국가(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과의 안세이 5개국 조약을 체결하였다는[1]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반막부 세력의 불만에서 기원되었다. 안세이 대옥의 부정 리스크에 미쳐나가는 서쪽 번국(사쓰마번, 조슈번, 도사번, 사가번)을 중심으로 한 반막부 세력은 나이 어린 메이지 천황을 옹립하고 일본 황실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나갔다. 1866년 도사번 출신이던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의 중개에 의해 사쓰마번과 조슈번 사이에 삿초동맹이 맺어지자 군사적 위협을 느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치 권력을 메이지 천황에게 대정봉환 의식에 따라 헌납하여 도쿠가와 가문을 보존하고, 미래의 신정부에 참여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에도(현 도쿄)에서 교토 어소 측의 군사적 움직임이 보이는 한편 사쓰마번, 조슈번, 도사번, 사가번을 비롯한 반막부 세력이 12월 9일 쿠데타를 일으켜 조정을 장악하고, 대정봉환을 계기로 도쿠가와 막부의 폐지와 신정부를 수립할 것을 선언했다.[2] 그 결과로 무진년인 게이오 5년(1868년)에 일본 전토에서 내전이 발발한다. 사쓰마와 조슈를 비롯한 반막부 세력의 군대가 막부 세력보다 비교적 근대적이었기 때문에 도바 후시미 전투를 서막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결국 에도까지 후퇴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개인적인 항복을 선언한다.[3] 이후 오우에쓰 열번 동맹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끝까지 충성한 잔당과 북부 혼슈 세력은 홋카이도까지 후퇴하여 에조 공화국을 건국했으나, 하코다테 전쟁을 마지막으로 보신 전쟁은 반막부 세력(일본 신정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4]
내전에서 승리한 반막부 세력은 일본에서 외국인들을 추방시키고, 과거에 막부가 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협상하려고 했으나, 장기적인 근대화 정책을 채택하고 개국시키기 위하여 포기했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한 신정부의 지도자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충신들에게 관용을 배풀었고, 옛 막부의 지도자들에게 신정부의 책임있는 직책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