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동남아시아의 국가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주 1], 통칭 베트남 (한자:越南/ 월남)[주 2]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주요 도시로는 하노이, 호찌민시, 다낭, 하이퐁, 호이안, 사파, 후에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와 만난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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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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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베트남어: Độc lập – Tự do – Hạnh phúc | ||
표어 설명 | 독립 – 자유 – 행복 | ||
국가 | 진군가 | ||
수도 | 하노이 북위 21° 02′ 00″ 동경 105° 51′ 00″ | ||
최대 도시 | 호찌민시 북위 10° 46′ 10″ 동경 106° 40′ 55″ | ||
정치 | |||
정치체제 | 단일 국가, 사회주의, 일당제, 민주집중제, 집단지도체제 | ||
공산당 총비서 | 응우옌푸쫑 | ||
국가주석 정부수상 국회주석 비서국 상임비서 | 보반트엉 팜민찐 브엉딘후에 쯔엉티마이 | ||
입법부 | 베트남 국회 | ||
집권여당 | 베트남 공산당 | ||
역사 | |||
독립 | 프랑스로부터 독립 | ||
• 독립선언 | 1945년 9월 2일 | ||
• 승인 | 1954년 | ||
• 통일 | 1976년 7월 2일1 | ||
지리 | |||
면적 | 330,341km2[1] (65 위) | ||
내수면 비율 | 1.3% | ||
시간대 | (UTC+07:00) | ||
DST | 없음 | ||
인문 | |||
공용어 | 베트남어 | ||
데모님 | 베트남인 | ||
인구 | |||
2020년 어림 | 98,721,275명 (15위) | ||
인구 밀도 | 314명/km2 | ||
경제 | |||
GDP(PPP) | 2020년 어림값 | ||
• 전체 | $10,035억 (26위) | ||
• 일인당 | $10,755 (106위) | ||
GDP(명목) | 2020년 어림값 | ||
HDI | 0.704 (117위, 2019년 조사) | ||
통화 | 동 (VND) | ||
종교 | |||
종교 | 무종교 73.7% 불교 14.9% 기독교 8.5% 신흥종교 2.7% 기타 0.2% | ||
기타 | |||
ISO 3166-1 | 704, VN, VNM | ||
도메인 | .vn | ||
국제 전화 | +84 | ||
11975년 4월 30일까지는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갈라져 있었다. |
면적은 약 33만 341km2이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최근 인구 통계에서는 9,649만 명이며,[2] 세계에서 1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나라의 명칭인 비엣남(베트남어: Việt Nam / 越南, 한국 한자음: 월남)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이 이름은 오늘날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하였던 옛 베트남 왕조인 남월(베트남어: Nam Việt남비엣)의 명칭을 거꾸로 부른 이름이다. 베트남 수도는 하노이이고, 정부형태는 사회주의 공화제이며 공산당이 유일당이다. 고대 베트남은 938년 박당 전투에서 응오 왕조의 시조인 응오꾸옌(베트남어: Ngô Quyền / 吳權, 한국 한자음: 오권)이 오대 십국의 하나인 남한과 싸워 이겨 독립하였다.[3] 독립 이후 베트남의 왕조들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국경을 넓혀갔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하였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이 지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4]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았다.[5]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었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6]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베트남 공화국을 세워 남북 대결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우며 베트남 정치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7]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8]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9] 1992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10] 2000년에는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