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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가 (1934–2020)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박구일(朴九溢, 1934년 11월 8일 ~ 2020년 3월 1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이다. 제17대 해병대사령관, 제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1]
박구일 朴九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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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일 중장(1987년 1월 1일) | |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예하 특별보좌관 | |
임기 | 1976년 2월 29일 ~ 1976년 5월 13일 |
대통령 | 박정희 |
총리 | 최규하 국무총리 |
장관 | 서종철 국방부 장관 |
차관 | 이민우 국방부 차관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34년 11월 8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
사망일 | 2020년 3월 1일 | (85세)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고려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
경력 | 제17대 해병대사령관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 비례대표) 제15대 국회의원(수성구 을)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배수자 |
자녀 | 2남 1녀 (장남 박재연, 차남 박재병, 외딸 박영숙)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복무기간 | 1958년 ~ 1988년 |
최종계급 | 예비역 대한민국 해병 중장 |
주요 참전 | 베트남 전쟁 |
1958년 해군사관학교 12기로 학사 학위 취득하였고 제17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하였다. 취임 당시엔 해군본부 제2참모차장이었지만, 재직 도중에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하여 사령부 부활 후 만들어진 첫번째 해병대 사령관이 되었다.[1]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하였고, 호(號)는 정암(廷岩), 본관은 영해이다.
부마항쟁 당시 해병대 1사단 7연대대장이었던 박구일은 부하들에게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다. 시민들이 때리면 그냥 차라리 맞아라. 절대 시민들에게 손대지 마라. 다만 총은 뺏기지 마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해병대원들은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또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하여 부마항쟁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표한 "부마항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 보고서[2]에 따르면 계엄군으로 참가한 해병대원들에 의해 구타에 대한 증언이 있으나, 이를 자세히 보면 당시 실제로 출동한 해병대 제 7연대가 아닌 제 2연대의 해병대원의 이○○(이등병)의 전해 들은 소문에 대한 증언으로 해병대의 구타 논란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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