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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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오(스페인어: Bajío →저지대)는 멕시코 고원 내부의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역이자 문화권으로, 멕시코시티 북서부에서 멕시코 중북부의 은광지대까지 아우른다. 남에서 북 방향으로 케레타로주. 과나후아토주, 할리스코주 일부 (센트로와 알토스데할리스코), 아과스칼리엔테스주, 사카테카스주 일부, 산루이스포토시주, 미초아칸주가 여기에 걸쳐 있다.
바히오
El Bají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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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
좌표: 북위 20.473335° 서경 101.200562° / 20.473335; -101.200562 | |
국가 | 멕시코 |
주 | 과나후아토주, 아과스칼리엔테스주, 케레타로주 일부, 할리스코주, 사카테카스주, 산루이스포토시주, 미초아칸주 |
멕시코의 문명지대인 메소아메리카와 아리도아메리카 사이 경계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콜럼버스 이전 시대에는 마을이나 문명이 비교적 소수에 머물렀다. 그 가운데 주를 이룬 것은 유목민 부족들로서 아즈텍인들로부터 치치메카 (Chichimeca), 즉 '오랑캐'로 불렸으며, 톨텍인과 아즈텍인의 선조로 추정되는 나와족들도 거주하였다. 이 지역의 부족민들은 스페인이 완전한 장악을 위해 치치메카 전쟁을 벌였으나 끝까지 저항한 민족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양측의 휴전과 타협을 통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누에바에스파냐 시절 바히오 지역은 은광 루트가 지나가는 전략적 입지상 스페인 왕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은광 개발과 더불어 주요 식민도시들도 이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과나후아토와 사카테카스가 있었다. 풍부한 광물 자원과 유리한 농업 환경으로 인해 머지않아 누에바에스파냐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멕시코 독립 전쟁이 처음 발발한 지역도 바히오 일대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 알론디가 데 그라나디타스의 습격, 칼데론 다리 전투 등 전쟁 초반의 대부분 전투가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
오늘날 이 지역은 멕시코는 물론 라틴아메리카 내에서도 상당한 경제력을 지닌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인접한 멕시코주의 산업지대로부터 국내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동시에, 저비용 전문 노동력과 적절한 기반시설을 찾는 외국기업의 투자도 이뤄지고 있으며,[1] 대다수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자동차와 전자회사가 주도하고 있다.[2][3][4][5] 바히오 지역의 대표 도시로는 과달라하라, 레온, 케레타로, 아과스칼리엔테스 등이 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