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 (발해)
발해의 제3대 국왕 (?–793)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문왕(文王, ?~793년 3월)은 발해의 제3대 왕으로, 무왕의 아들이다. 휘는 흠무(欽茂), 연호는 대흥(大興)과 보력(寶曆)이다.[1] 황후는 효의황후(孝懿皇后)다.[2][3][4] 존호는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이다. 구당서, 신당서, 발해고 등에는 그의 존호가 전하지 않다가 20세기에 와서 정효공주, 정혜공주의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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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문왕文王, 재위 ...
문왕 文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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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부 | |
제3대 발해 국왕 | |
재위 | 737년~793년 |
전임 | 무왕 |
후임 | 폐왕 |
이름 | |
휘 | 대흠무(大欽茂) |
시호 | 문왕(文王) |
존호 |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
연호 | 대흥(大興) · 보력(寶曆)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793년 3월 |
사망지 | 발해국 동경용원부 |
국적 | 발해 |
성별 | 남성 |
왕조 | 발해 |
부친 | 무왕 |
모친 | 미상 |
배우자 | 효의황후 |
자녀 | 대굉림, 대정알, 대영준, 대숭린, 정혜공주, 정효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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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읍을 동모산(東牟山)에서 742년 무렵 중경현덕부(中京縣德府)로 천도했으며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하고 선조성, 중대성, 정당성을 설치했다. 한편 781년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 평로치청절도사 이정기(李正己)에게 군마(軍馬)를 수출했다. 755년 수도를 흑룡강성 일대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옮겼다가 785년 다시 수도를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로 옮겼다. 수도를 세 번 천도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 칭했다. 일본 헤이안시대의 궁성 헤이조궁(平城宮) 터에서 발견된 두 점의 목간(木簡)에 발해사(渤海使)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758년에 만든 목간에는 견고려사(遣高麗使)라고 쓰였고, 국서에도 고려국왕이라 쓰였다. 정효공주묘지명에 의하면 그는 당대에 황상(皇上)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