룀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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룀 스캔들은 1931년과 1932년 반(反)나치 세력이 나치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에른스트 룀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을 공개한 사건이다. 스캔들의 여파로 룀은 동성애자로 알려진 첫 정치인이 되었다.
룀은 나치당의 초기 당원이었으며,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와 막역한 사이였다. 룀은 동성애자였지만, 개인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을 분리하려고 노력하였다. 1920년대 후반 볼리비아에서 친구인 카를귄터 하임조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룀의 이러한 이중생활은 1930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의 참모장에 이명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독일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독일 형법 175조의 폐지를 지지하면서도 나치를 공격하기 위해 동성애 혐오를 사용하였고, 동성애자들이 나치를 지배하는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퍼뜨렸다. 사민당과 공산당의 묙표는 1933년 초 일어난 나치의 권력 탈취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1931년 4월부터 독일 사민당의 신문 뮌헤너 포스트는 돌격대의 동성애 의혹에 관한 일련의 기사를 신문의 헤드라인에 장식하였다. 사민당 지도부는 룀의 성적인 면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입수하고 가능하면 형법 175조에 의거한 유죄 판결을 내리려고 하였다. 룀은 총 5회의 재판을 받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았다. 1932년 3월 독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사민당은 전 나치당원이었던 헬무트 클로츠가 편집한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이 소책자에는 일부 나치당원들이 룀 살해 모의를 하도록 하였으나, 시도는 실패로 들어갔고, 사람들이 나치에 부정적인 반응을 가지도록 하였다.
스캔들은 1932년 5월 12일 클로츠가 룀의 편지를 출판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나치 대표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국가적으로 주목 받게 되었다. 많은 독일인들은 룀의 사생활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스캔들은 나치의 선거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도덕적 쇄신을 하는 정당으로 내세우는 능력에는 영향을 끼쳤다. 히틀러는 스캔들 동안 룀을 변호하였으며, 룀은 히틀러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1934년 룀과 그의 동조자들을 동성애 및 배반 혐의로 살해하였으며, 숙청 이후 나치 독일에서는 본격적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