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펠트 전투
독일의 대헝가리 전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레히펠트 전투(Battle of Lechfeld)는 955년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 동안 벌어진 일련의 군사 교전으로, 오토 1세 대왕이 이끄는 독일 왕국이 허르커 불추와 족장 렐과 수르가 이끄는 헝가리 군대를 전멸시켰다. 이 독일의 승리로 마자르인들의 라틴 유럽 침공은 끝이 났다.
레히펠트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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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독일 왕국 작센 공국 튀링겐 공국 바이에른 공국 슈바벤 공국 | 헝가리 대공국 | ||||||
지휘관 | |||||||
오토 1세 로트링겐 공작 콘라트 † 슈바벤 공작 부르하르트 3세 보헤미아 공작 볼레슬라프 1세 |
허르커 불추 렐 Súr | ||||||
병력 | |||||||
7,000–9,000 중기병 | 8,000–10,000 궁기병 |
헝가리군은 955년 6월 말이나 7월 초에 8,000-10,000명의 기마 궁수, 보병, 공성 기관을 이끌고 바이에른 공국을 침공하여 오토 1세 휘하의 독일 주력군을 들판의 전투로 끌어들이고 파괴할 계획이었다. 헝가리인들은 레히강에서 아우크스부르크를 포위했다. 오토 1세는 8개 군단으로 나누어진 8,000명의 중기병으로 이루어진 군대와 함께 도시를 구호하기 위해 진군했다.
8월 10일 오토 1세가 아우크스부르크에 접근했을 때 헝가리의 기습 공격으로 보헤미아 공국 후위군이 파괴되었다. 헝가리군은 독일군 진지를 약탈하기 위해 멈추었고, 로렌 공작 콘라트는 중장 기병대를 이끌고 반격을 감행하여 헝가리군을 해산시켰다. 그런 다음 오토 1세는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헝가리 주력군과 전투를 벌였다. 독일 중기병은 근접전에서 경무장과 장갑을 갖춘 헝가리군을 물리쳤지만, 후자는 순조롭게 퇴각했다. 오토 1세는 추격하지 않고 밤새 아우크스부르크로 돌아가 전령을 보냈다. 전 지역 독일군에게 동부 바이에른에서 도강을 감시하고, 헝가리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도록 명령했다. 8월 11일과 12일, 폭우와 홍수가 후퇴하는 헝가리인들의 속도를 늦추고, 독일군이 그들을 추적하여 모두 죽일 수 있게 되면서 헝가리의 패배는 재앙으로 바뀌었다. 헝가리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아우크스부르크로 끌려가 교수형을 당했다.
독일의 승리는 독일 왕국을 보존하고, 서유럽으로의 유목민 침략을 영원히 중단시켰다. 오토 1세는 승리 후 그의 군대에 의해 조국의 황제이자, 아버지로 선포되었으며, 레히펠트 전투 이후 강화된 지위를 바탕으로 962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