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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의 두 왕자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런던탑의 두 왕자(Princes in the Tower)는 리처드 3세에 의해 런던탑에 갖혔다가 실종된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작 슈루즈베리의 리처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인 두 형제는 삼촌이자 호국경이었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에 의해 런던탑에 갇혔다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실종 당시 에드워드 5세는 12 세, 요크공 리처드는 9세에 불과하였다. 에드워드 5세는 대관식을 앞두고 있었으나 실종되어 왕위는 리처드 3세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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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에서 두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앞뒤의 정황을 보면 살해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대에도 리처드 3세가 왕위를 탐해 조카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둘은 아마도 1483년 어느날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직접 살해에 가담한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만 있을 뿐이다. 그 중에는 제2대 버킹검 공작 헨리 스태퍼드나 헨리 7세를 지목하는 설이 있다. 둘이 암살을 피해 탈출하여 신분을 숨긴채 살았다는 설도 있다.
두 소년이 암살을 피해 탈출하였다는 소문은 반란의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 1487년 렘버트 심넬은 자신이 요크공 리처드라 주장(나중에 제17대 워윅 백작 에드워드 플랜태저넷이라고 바꿈)이라 주장하며 왕위를 요구하였다. 1491년 왕위를 요구하다 1497년 사로잡힌 퍼킨 워벡은 자신이 플랑드르로 망명하였던 요크공 리처드라고 주장하였다. 두 왕자의 고모였던 요크 공녀 마거릿은 워벡이 자신의 조카가 맞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674년 런던탑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두 어린 사람의 유골이 든 나무상자를 발견하였다. 런던탑의 돌계단 밑에 있던 유골 상자가 발견되자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두 왕자의 것이라고 믿게 되었지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찰스 2세는 이 유골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하였고, 오늘날에도 그곳에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