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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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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주의(독일어: Deutscher Nationalismus 도이처 나티오날리스무스[*])는 독일인 및 독일어 사용자의 국민 국가로서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하는 이념을 일컫는다. 독일 국민주의는 독일인의 민족 정체성에서 자부심을 갖고, 이를 강조한다. 독일 국민주의 최초의 연원은 범독일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한 나폴레옹 전쟁 와중에 탄생한 낭만적 민족주의와 함께 시작한다. 독일 국민 국가의 옹호는 나폴레옹하 프랑스가 독일 지역을 침공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서 주요 정치 집단을 형성하며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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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인들은 독일 문제에 관하여 독일 국민 국가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소독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대독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논쟁하였다.[1] 프로이센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당파는 소독일주의를 추구하였다.[1]
공격적인 독일 국민주의 및 영토 팽창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이끈 주요 요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와 경쟁하고자 식민 제국을 형성하였다. 1930년대 나치당이 권력을 잡게 되어, 혈통으로서의 독일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타 민족을 배제하였으며, 독일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대 게르만 제국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이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및 타 민족들을 인간 이하(운터멘쉬Untermenschen)로 간주하고 학살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나치 독일의 패배 이후, 독일 국가는 냉전의 서막을 열며 동독과 서독으로 나눠지게 되었으며, 동독과 서독 모두 독일인 정체성을 갖고, 비록 다른 맥락에서의 재통합이기는 하나 두 국가 모두 재통합을 목표로 하였다. 유럽 연합의 창설은 부분적으로 독일인 정체성을 유럽 정체성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서독은 전후 경제 기적을 맛보았으며, 이는 곧 이주 노동자 프로그램을 창설하게 된 원인이었다. 많은 이주 노동자들, 특히 독일의 터키인 이주 노동자들은 독일에 정착하여,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갈등을 불러오기도 했다.
독일 통일은 독일 안팎 모두에 어느 정도 불안을 가져온 1990년의 전환점(Die Wende)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이후 독일은 유럽 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유럽 국가 부채 위기와 유럽 난민 위기에서 보인 독일의 역할은 특히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에서 독일이 권위적으로 국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니, 독일 안팎으로 국제 사회에서의 독일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1945년 이후로 독일이 나치 정권과 그들이 벌인 잔혹한 행위들과 단절한 이후, 독일 국민주의는 독일 국내에서 터부시되었으며,[2]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인정해야 하는 힘겨운 길로 나아갔으나, 과거와 현재의 업적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독일 문제는 이 같은 관점에서 전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국가 자부심은 독일이 2006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하자, 독일 국내를 휩쓸었다. 독일 민족 정체성과 긍지를 강조하는 극우 정당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존재하였으나, 권력을 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