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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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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개신(일본어: 大化の改新 たいかのかいしん[*])은 일본 아스카 시대의 고토쿠 오키미 2년, 일본 연호로 다이카(大化) 2년(646년) 봄 정월 갑자 초하루(1일)에 발효된 〈개신(改新)의 조(詔)〉를 토대로 한 정치 개혁 운동이다. 나카노오에노미코토(中大兄皇子, 훗날의 덴지 천황) 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 훗날의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한 을사의 변 뒤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암살 사건까지 포함시켜서 ‘다이카 개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키미(大王, 음독하면 '대왕'이지만 천황의 뜻으로 사용)의 궁(수도)을 아스카(나라)에서 나니와 궁(難波宮,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으로 옮기고, 소가 씨를 포함한 아스카의 호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정치 구조가 오키미 중심의 정치로 바꿨다. 이때부터 황제국만 사용할 수 있는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다이카’라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연호를 사용했다. 원래 오오키미(大王)은 황제와 같은 의미로서 야마토국의 황제라는 의미로 사용됐었다. 다이카 개신이 일어나고 나서부터 오오키미(大王)이라는 단어를 덴노(天皇,천황)라는 글자와 병용하며 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덴지천황 이후 덴무천황때 일본서기가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