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치하의 오스트리아
나치 독일의 안슐루스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오스트리아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나치 독일 치하의 오스트리아 또는 국가사회주의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된 1938년 3월 13일(안슐루스)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의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기술한다.
간략 정보 오스트리아국 (1938–1940)Land Österreich오스트마르크 국가대관구(1940–1942)Reichsgaue der Ostmark알파인과 도나우강 국가대관구 (1942–1945)Alpen- und Donau-Reichsgaue, 국가 ...
오스트리아국 (1938–1940) Land Österreich 오스트마르크 국가대관구 (1940–1942) Reichsgaue der Ostmark 알파인과 도나우강 국가대관구 (1942–1945) Alpen- und Donau-Reichsgau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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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독일의 국가 제안: 독일의 부활. 축가 ("Deutsche Auferstehung. Ein festliches Lied") | |||
1938년 나치 독일 내 오스트리아 | ||||
1941년 오스트리아의 행정 구역 | ||||
수도 | 대빈(영어판) (데 팍토) | |||
정치 | ||||
정치체제 | 나치 독일의 구성 요소 | |||
국가판무관 1938년 ~ 1940년 | 요제프 뷔르켈(영어판) | |||
제국지사(영어판) 1938년 ~ 1939년 1939년 ~ 1940년 1940년 ~ 1945년 |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요제프 뷔르켈 발두어 폰 시라흐 | |||
역사 | ||||
전간기 / 제2차 세계대전 | ||||
• 베르히테스가덴 협정 | 1938년 2월 12일 | |||
• 안슐루스 | 1938년 3월 13일 | |||
• 히틀러의 빈 연설 | 1938년 3월 15일 | |||
• 국가의회 선거 | 1938년 4월 10일 | |||
• 오스트마르크 (오스트리아) | 1939년 4월 14일 | |||
• 빈 점령(영어판) | 1945년 4월 13일 | |||
• 나치 독일의 항복(영어판) | 1945년 5월 8일 | |||
인문 | ||||
공용어 | 독일어 | |||
경제 | ||||
통화 | 라이히스마르크 (ℛ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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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오스트리아인들은 나치 독일과의 연합을 열렬히 지지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95만 명의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치 독일의 군대로 싸웠다. 다른 오스트리아인들은 죽음의 수용소 간부에서부터 고위 나치 지도부에 이르기까지 나치 행정부에 가담했다. 최종 해결책을 시행한 관료들의 대다수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2]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은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첫 번째 희생자(영어판)라는 생각에 위안을 구했다. 비록 나치당이 즉시 금지되었지만,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같은 철저한 탈나치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사회의 파벌들은 정치 개혁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슐루스가 나치 독일에 의한 통치의 피해일 뿐이라는 견해를 발전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