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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金台鎬, 1962년 8월 21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8·19·21·22대 국회의원이다. 제36대 거창군수,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를 지냈다.
김태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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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8월 21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 (62세)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상산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농업교육학 박사 |
경력 | |
군복무 | 육군 병장 만기전역 |
종교 | 불교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18·19·21·22 |
정당 | 국민의힘 |
지역구 |
|
선거구 | 거창군 |
당선 횟수 | 1 |
임기 | 2002년 7월 1일~2004년 5월 17일 |
제32·33대 경상남도지사 | |
선거구 | 경상남도 |
당선 횟수 | 2 |
임기 | 2004년 6월 6일~2010년 6월 30일 |
선거구 |
|
당선 횟수 | 4 |
임기 | 2011년 4월 28일~2016년 5월 29일 |
임기 | 2020년 5월 30일~ |
1985년에 서울대학교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대 강사로 활동하다가 거창군 출신 국회의원 이강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5년에 신한국당에 입당하였고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으로 재직하였다.
1998년 경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도의원으로 활동하다가 거창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김태호는 41세로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 되었다.
거창군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에 경남도지사 김혁규의 사퇴로 경남지사 보궐선거가 열리자 군수직을 사퇴,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김두관 후보를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임기 중 남해안 프로젝트 추진과 5대 분야 도정발전 로드맵 수립과 람사르 총회 유치 성공, 신성장동력산업 인프라 구축 등으로 무난하게 도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2009년 재임 중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의 박연차 게이트 연루는 무혐의로 처리되어 위기를 넘겼다. 김태호는 무난한 도정 수행으로 3선 도전 가능성이 높았지만 2010년 초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에 대해 그의 입각 등 중앙 정계 진출을 위한 불출마라는 시각과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과 관련된 부담에 의한 불출마라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했다. 2010년 6월 30일에 도지사직에서 퇴임하였고 이후 청와대 입각설이나 국무총리 기용설 등이 자주 거론되었다.
같은 해 8월 8일에 정운찬의 후임으로 국무총리서리로 지명되었다. 당시 김태호는 49세로 1971년 김종필 이래 40대의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 지명된 것이었다. 그는 정상적으로 병역을 마쳤고, 줄곧 경남지방을 근거지로 정치를 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위장전입이나 부동산투기와도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많은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논란 대상이 되었던 병역, 위장전입, 여성 편력,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에서는 결격되는 사유가 없어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논란, 도지사 직권남용, 일부 세금신고 누락 등을 이유로 야당에서 비리 및 비도덕적 행동들의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다른 진술을 하여 더욱 여론이 악화되자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기 전인 8월 29일 오전 10시에 후보직을 자진사퇴하였다.
후보직을 사퇴한 김태호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유학 초청을 받아 2010년 10월부터 중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2011년 4·27 재보궐선거 출마 권유를 받아와서 5개월 만에 귀국하였다. 그가 출마한 김해시 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묘지가 있는 봉하마을이 포함된 지역구였으므로 김태호는 노무현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선거에서 51.02%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총리 후보 사퇴 후 몰락한 것으로 보였던 김태호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재기하게 되었다. 제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의 김경수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며 재선 의원이 되었다. 2014년 7월 14일에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8년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지사에 출마했다. 하지만 김경수에게 패배하면서 낙선했다.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다. 당선 이후 국민의힘에 복당했다.[1]
실시년도 | 선거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98년 | 지방 선거 | 6대 | 도의원 | 경남 거창군 제2선거구 | 한나라당 | 8,277 표 |
|
1위 | 초선, 민선 2기 | |||
2002년 | 지방 선거 | 36대 | 군수 | 경남 거창군 | 한나라당 | 20,782 표 |
|
1위 | 초선, 민선 3기 | |||
2004년 | 6·5 재보선 | 32대 | 도지사 | 경상남도 | 한나라당 | 454,883 표 |
|
1위 | 초선, 민선 3기 | |||
2006년 | 지방 선거 | 33대 | 도지사 | 경상남도 | 한나라당 | 852,377 표 |
|
1위 | 재선, 민선 4기 | |||
2011년 | 4·27 재보선 | 18대 | 국회의원 | 경남 김해시 을 | 한나라당 | 44,501 표 |
|
1위 | 초선 | |||
2012년 | 총선 | 19대 | 국회의원 | 경남 김해시 을 | 새누리당 | 63,290 표 |
|
1위 | 재선 | |||
2018년 | 지방 선거 | 37대 | 도지사 | 경상남도 | 자유한국당 | 765,809 표 |
|
2위 | 낙선 | 민선 7기 | ||
2020년 | 총선 | 21대 | 국회의원 |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 무소속 | 49,123 표 |
|
1위 | 3선 | |||
2024년 | 총선 | 22대 | 국회의원 | 경남 양산시 을 | 국민의힘 | 50,685표 |
|
1위 | 4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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