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작가 (1644–1722)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김창집 (金昌集, 1648년(인조 26년) ∼ 1722년 5월 2일(경종 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작가이다. 자(字)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 시호(諡號)는 충헌(忠獻)이며, 본관은 본관은 안동(安東).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며, 문곡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다가 노론, 소론 분당 후에는 노론에 가담하였다. 예조 판서 김창협(金昌協), 이조 판서 김창흡(金昌翕), 김창업 등의 형이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그의 4대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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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색으로는 노론이었으며, 노론의 영수였으나 소론인 조문명의 처삼촌이기도 하다.[1]
소현세자빈 민회빈 강씨 일족의 억울함을 상소하여 신원, 복권시켰다. 경종 때 연잉군(후일의 영조)의 세제 대리청정을 주장했다가 소론에 의해 역모로 몰려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 및 아들 김제겸, 손자 김성행 등과 함께 사사되어 이를 신임사화라 부른다. 이른바 노론 4대신으로 불리며, 창협(昌協), 창흡(昌翕), 창업(昌業), 창즙(昌緝), 창립(昌立)등 육창(六昌)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