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https://wikiwandv2-19431.kxcdn.com/_next/image?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9/Barley_Hall_1.jpg/640px-Barley_Hall_1.jpg&w=640&q=50)
그레이트 홀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그레이트 홀(영어: Great hall)은 중세 후기의 홀이다. 중세에는 왕궁, 성 또는 대형 매너하우스 또는 홀하우스의 메인 룸으로 사용되었으며, 16세기와 17세기 초에는 컨트리 하우스 안에 건설되어 가족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그레이트 챔버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 "그레이트(Great)"라는 단어는 단순히 큰 의미였고 우수하다는 현대적인 의미를 얻지 못했다. 중세 시대에는 건물에 2차 홀이 없는 한 단순히 "홀"이라고 불렸지만, 수세기 동안 이러한 형태로 살아남은 객실을 중세 시대 이후의 집에서 발견된 다른 유형의 홀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레이트 홀이라는 단어가 우세하게 사용된다. 그레이트 홀은 주로 프랑스,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에서 나타나며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방들이 발견된다.
![Thumb image](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9/Barley_Hall_1.jpg/640px-Barley_Hall_1.jpg)
전형적인 그레이트 홀은 너비의 1.5배에서 3배 사이의 직사각형 방으로, 너비보다 높았다. 한쪽 끝에 스크린 통로를 통해 들어갔고, 종종 큰 퇴창을 포함하여 긴 쪽 중 하나에 창문이 있었다. 스크린 통로 위에 종종 민스트럴의 갤러리가 있었다. 홀의 다른 쪽 끝에는 높은 테이블이 놓인 상단이 있었다. 영주 가족들의 더 많은 개인실은 복도 끝 너머에 놓여 있었고 부엌, 술 저장실 및 식료품실은 스크린 통로 반대편에 있었다.
중세 후기까지는 왕족 및 귀족의 저택에 거실이 없었기 때문에 그레이트 홀은 손님을 맞이하거나 집주인, 그의 중산층 시중 및 적어도 일부 하인을 포함한 식솔들이 공동식사를 하는 다목적실로서 사용되었으며, 밤에는 가족 구성원 중 일부가 홀 바닥에서 잠을 잤다.
오늘날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 같은 몇몇 대학교에는 여전히 매일 식당으로 사용되는 중세 홀이 있으며, 최근에 설립된 수많은 학교와 기관에는 중세 그레이트 홀이나 수도원 건물을 기반으로 한 홀과 식당이 있다. 런던의 인즈 오브 코트와 리버리 컴퍼니즈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테이블"(종종 스크린 통로에서 가장 먼 홀의 상단에 있는 작은 단이나 무대에 있음)에는 돈(대학에서)과 벤치의 마스터(법정의 여관에서)가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학생이나 법정 여관에 머물던 변호사들은 높은 테이블에 직각으로 배치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홀의 몸체를 따라 내려 가면서 중세 가정, 수도원 또는 대학 가정의 계층적 배열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