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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이 천황(일본어: 後西天皇, 1638년 4월 20일 ~ 1685년 3월 22일)은 제111대 일본 천황(재위: 1654년 ~ 1663년)이다. 휘는 나가히토 (
처음에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 초대 당주인 요시히토 친왕(好人親王)의 딸 아키코 여왕(明子女王)과 혼인하고 2대 다카마쓰노미야를 이어받아 하나마치노미야(花町宮)로 불렸다.
즉위 1년 전에는 형인 고코묘 천황(後光明天皇)의 묘다이(名代)로써 에도(江戸)에 가 있었다. 조오(承応) 3년(1654년) 고코묘 천황이 붕어했을 때 앞서 천황이 양자로 들였던 친동생 사토히토 친왕(識仁親王, 훗날의 레이겐 천황)은 젖도 못 뗀 갓난아이였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출가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마치노미야가 형왕의 뒤를 이어 11월 28일에 즉위하게 되었고, 그의 즉위는 사토히토 친왕이 장성해 즉위할 때까지의 대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천황은 학문을 좋아하여 《수일집》(水日集) 등의 각종 문집을 만들었고, 와카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고전의 이해에도 뛰어났다. 간분(寬文) 3년(1663년) 1월 26일에 천황은 10세가 된 사토히토 친왕에게 양위하였다.
천황의 재위 중에 이세 신궁(伊勢神宮)・오사카성(大坂城)・교토 다이리(内裏) 등의 화재나 메이레키 에도 대화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지진, 물난리 등의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났으며, 당시 사람들은 천황의 부덕을 탓했고 천황 자신도 이를 괴로워하다 양위하였다고도 전한다.[1] 또한 당시 교토 조정의 구게(公家) 나카미카도 노부스미(中御門宣順)의 일기 《선순경기》(宣順卿記)나 미부 다다토시(壬生忠利)의 《충리숙례기》(忠利宿禰記) 간분 2년(1662년) 9월 23일조에도 도쿠가와 이에쓰나(徳川家綱)의 사자인 기라 와카사노카미(吉良若狭守)[2])가 뇨인(女院)[3]에게 천황의 양위를 아뢰었다고 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들 기사를 전제로 천황에게 양위를 독촉했던 배후 세력으로써 고미즈노오 법황(後水尾法皇)[4] 막부[5]가 거론되고 있으며, 아울러 유력 도자마 다이묘인 센다이번주 다테 쓰나무네가 고사이 천황 자신과는 종형제지간이라는 점을 막부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도 한다.[6] 그러나 이에 대해 양위는 어디까지나 천황 자신의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설도 존재한다.[7]
오로지 학문에 몰두하여 『수일집 (
또한, 「고사이인(
고미즈노오 천황의 8황자. 어머니는 텐지 호슌몬인(
능 (일본어: 陵 みささぎ[*])은 일본 궁내청에 의해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구마노센잔초 센뉴지 내에 있는 츠키노와능 (일본어: 月輪陵 つきのわのみささぎ[*])로 치정되어있다. 궁내청 상의 형식은 석조 9층탑이다.
또한 고쿄에서는 코레이덴 (궁중3전 중 하나)에서 다른 역대 천황, 황족과 함께 천황의 혼이 모셔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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