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2세 칼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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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2세 칼부스(라틴어: Carolus II Calvus, 프랑스어: Charles II le Chauve, 독일어: Karl II der Kahle, 823년 6월 13일 – 877년 10월 6일)은 840년부터 서프랑크 왕국의 왕이었고 875년에는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했다. 카롤링거 왕조의 일원으로 경건왕 루트비히의 막내아들이다. "칼부스"란 대머리라는 뜻이다.
카롤루스 2세 칼부스 Carolus II Calvu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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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황제 | |
재위 | 875년-877년 |
즉위식 | 875년 12월 29일 |
전임 | 루도비쿠스 2세 이우니오르 |
후임 | 카롤루스 3세 크라수스 |
이탈리아 국왕 | |
재위 | 875년-877년 |
전임 | 루도비쿠스 2세 이우니오르 |
후임 | 카를로마누스 |
서프랑크인의 왕 | |
재위 | 843년-877년 |
전임 | 로타리우스 1세 |
후임 | 루도비쿠스 2세 발부스 |
신상정보 | |
출생일 | 823년 6월 13일 |
사망일 | 877년 10월 6일 |
왕조 | 카롤루스조 |
부친 |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
모친 | 유디트 |
배우자 | 오를레앙의 이르멘가르트 프로방스의 리첼다 |
종교 | 천주교 |
829년 알레만니아와 네우스트리아의 왕에 봉해졌는데 이때 그가 아버지로부터 영토를 하사받을 때 두 형 로타르 1세와 루트비히 독일인의 영지를 일부 떼어준 일이 격심한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840년 형 로타르 1세가 단독 통치자가 되자 반발하여 루트비히 독일인와 손잡고 시민 전쟁을 일으켰으며, 841년 퐁트누아 전투에서 로타르 1세의 이탈리아군을 격파하고 843년 베르덩 조약을 체결하였다.
838년 12월 이복 형 페펭이 죽은 뒤 아버지 경건왕 루트비히는 그에게 아키텐을 주었으나 아키텐 귀족들의 반발로 취소됐다. 이후 그는 아키텐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조카인 피핀 2세와 싸워서 864년에 승리한다. 로타링기아의 왕인 조카 로타르 2세가 이혼하는 문제에 루트비히 독일인와 함께 개입하기 시작하여 로타르 2세의 유일한 혈육인 위그를 몰아내고 메르센에서 로타링기아를 분할(메르센 조약)한다. 869년 그는 로타링기아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스스로 황제이며 존엄한 자(Imperator Augustus)라고 지칭하였다. 875년 8월에는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알프스를 넘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제관을 차지하여 다시 독일인 루트비히 및 그의 아들카를로만, 소 루트비히와 갈등했다. 실제 그는 대머리는 아니었지만 태어났을 때 영토가 없었다는 것이 후대에 머리가 없다, 대머리로 와전되어 대머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