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비노 전쟁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우르비노 전쟁 (1517년)은 이탈리아 전쟁 중간에 있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1] 교황 레오 10세가 이끄는 교황령 군대와 우르비노 공작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교황 레오 10세는 이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명목상으로만 교황령에 속했던 로마냐와 그 인근 지역을 실질 장악한 후 자신의 출신 가문이 지배하는 영지로 삼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간략 정보 우르비노 전쟁, 날짜 ...
우르비노 전쟁 | |||||||
---|---|---|---|---|---|---|---|
이탈리아 전쟁의 일부 | |||||||
| |||||||
교전국 | |||||||
베네치아 공화국 | 교황령 | ||||||
지휘관 | |||||||
프란체스코 마리아 | 로렌초 2세 데 메디치 |
닫기
첫 목표로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질렀던 우르비노 공작을 압박하자 이에 반발한 우르비노 공작과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1517년 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은 동년 9월까지 8개월간 진행됐다. 결국 우르비노 공작 프란체스코 마리아 1세는 만토바로 퇴각하고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2세(1492-1519)가 우르비노 공작이 되었다.
로렌초 2세가 1519년에 사망한후 그의 딸 카트린 데 메디시스가 우르비노 공작을 이어받았다.[2] 그러나 1522년 교황 하드리아노 6세때 프렌체스코 마리아 1세가 다시 우르비노 공작을 되찾았다. 이 일로 인해 프렌체스코 마리아 1세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그리고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인 클레멘스 7세와 매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황이 주도한 코냑동맹전쟁(1526~1530)중에 동맹군 총사령관이면서도 매우 소극적으로 전쟁에 임했고, 로마 약탈(사코 디 로마, 1527년)이 발생하게 된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