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아 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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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아 백국(프랑스어: comté d'Artois, 네덜란드어: Graafschap Artesië)은 프랑스의 옛 프로뱅스이며, 1237년부터 1659년까지 부르고뉴 백작들이 소유했었고, 1493년부터 1659년까지는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아르투아 백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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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Comté d'Artois 네덜란드어: Graafschap Artesië 라틴어: Comitatus Artesia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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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아 백국 (1350년) | ||||
수도 | 아라스 (아트레흐트) | |||
정치 | ||||
정치체제 | 봉건제 | |||
아르투아 백작 1237년–1250년 1404년–1419년 | 로베르 1세 (초대) 용맹공 장 (마지막) | |||
역사 | ||||
• 결혼 지참금으로 프랑스에 주어짐 | 1180년 | |||
• 로베르 1세 | 1237년 | |||
• 부르고뉴의 일부 | 1384년 | |||
• 합스부르크 가에게 넘어감 | 1493년 | |||
• 부르군트 관구 가입 | 1512년 | |||
• 프랑스로 복귀 | 1659년 11월 5일 | |||
• 프랑스 귀족 작위 폐지 | 1792년 9월 21일 | |||
인문 | ||||
공용어 | 고대 네덜란드어, 중세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
오늘날 아르투아는 프랑스 북부에 있으며,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지역의 크키는 대략 4,000 km2이고 인구는 약 백만명 정도이다. 주요 도시는 아라스 (아트레흐트), 칼레 (칼러스), 불로뉴쉬르메르 (보넌), 생토메르 (신트오마르스), 랑스, 베튄이다. 현재 파드칼레주를 형성하고 있다.
본래 봉건 백국이던 아르투아는 플랑드르 백작들에 의해 합병되었다. 아르투아는 1180년 플랑드르의 공녀 에노의 이자벨의 결혼 지참금으로서 프랑스에 속했다가, 이자벨의 손자인 로베르 1세를 위해서 1237년 분리된 백국이 되었다. 상속을 통해서 아르투아는 1384년 부르고뉴 백작의 통치하에 놓이게 됐다. 제4대 부르고뉴 백작 용담공 샤를이 1477년에 사망하면서,[1] 아르투아는 합스부르크 가가 상속했고, 훗날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가에게 넘어갔다.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1566년 종교 반란 이후, 아르투아도 1576년에 잠시 네덜란드 반란에 합류했고, 헨트 강화 조약까지도 참여하여 1579년에 아라스 동맹을 형성하기도 했다.
연합 이후, 아르투아와 에노(헤네하우언)는 펠리페 2세와 분리 협약까지 이르렀다. 아르투아는 30년 전쟁에서 프랑스에 정복될까지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잔류했다.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프랑스의 합병이 정식 인정되었으며, 프랑스의 프로뱅스가 되었다. 아르투아는 이미 대부분이 프랑스어가 주요 언어이고, 프랑스에 합병될 때까지 남네덜란드의 일부였다.
아르투아는 풍부한 석탄 자원으로 19세기 중반에 급속도로 빠른 산업 발전을 겪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프랑스내 영불 연합군의 최전선이였기에, 엄청난 피해를 겪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석탄 산업의 쇠퇴로 인근 지역과 함께 긴 침체를 겪고 있다.